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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이야기

과학적 천문학 시작

by Nora노라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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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유의 씨앗

고대 그리스 세계는 그 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정치적 그리고 지성적 자유를 누리면서 과학의 엄청난 발달을 가져왔다.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후 200년까지 700여 년 동안 그리스 철학자들은 천문현상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세상이 초월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현대인에게는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예를 들어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이는 별은 밤마다, 그리고 태양은 아침마다 누군가가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기 때문에 반짝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플라톤이 기하학이 모든 진리의 근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당시 학계로 하여금 우주의 정확한 작동 원리를 알아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된 채로 진좌 하고 있고, 행성들은 완전한 원 궤도 운동하는 불멸의 존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초로 북반구 하늘에 별자리를 그려 넣은 이가 에우독소스이며, 별의 밝기를 6개의 등급으로 처음 분류한 인물이 히파르코스이다.

서양 지성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서 아테네의 플라톤 밑에서 수학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왕의 스승이었으며 기원전 355년에는 리케이움이라 불리는 자신의 학당을 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가 물리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다고 믿었으며, 이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거리의 측정

그리스 시대에 기하학과 삼각법이 발달하자 천문학적 거리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기원전 5세기경에 이미 피타고라스는 태양, 지구, , 그리고 행성들이 모두 구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생각을 받아들였다. 월식 때 달을 가리는 지구의 그림자가 원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250년경에 지구의 둘레를 처음 쟀다. 하짓날 정오에 태양 빛이 이집트의 시에나에 있는 한 우물에는 수직으로 떨어지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 에라토스테네스는 간단한 기하학 원리를 이용해 지구의 둘레를 5퍼센트의 오차로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히파르코스와 아리스타르코스는 월식이 일어나는 시각을 측정해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결정했다. 그러나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태양 빛이 거의 평행하게 지구에 온다는 사실을 이용해 지구의 크기를 추산했다. 북회귀선에 있는 시에나에 태양 빛이 수직으로 비칠 때, 여기서 정북으로 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알렉산드리아에는 7도의 기울기로 떨어져 물체의 그림자가 생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800킬로미터 : 지구 둘레 = 7 : 360의 관계가 성립함을 알 수 있다.

 

지구 중심 우주관

사람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도 지구가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닌다고 느낄 수 없으며, 별들의 상대 위치 역시 하늘에 늘 고정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 철학자 중 극히 소수, 예를 들면 기원전 280년경에 활동했던 아리스타르코스 같은 이는, 지구 중심 우주관을 부정하고 지구 대신에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들의 생각은 오랫동안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프톨레마이오스에 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적 세계관에 큰 수정이 이루어진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에서는, ,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이 순서대로 각기 다른 반지름의 원 궤도를 돌며, 그 바깥에 별들이 자리한다. 이러한 생각은 천체들의 천구상 운동의 겉보기 속도에 근거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달은 한 달에 한번, 태양은 1년에 한 번, 토성은 29.5년에 한 번꼴로 천구상을 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성들의 실제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이기 때문에, 이 천체들이 실제로 관측되는 위치는 원 궤도 운동에서 추정되는 위치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큰 원을 따라 돌면서 동시에 주전원이라 불리는 이보다 작은 원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당시 세계의 중심지라고 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면서 왕성한 학술 활동을 벌였던 그리스 학자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중의 위대한, 그리고 마지막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의 지구 중심 우주 모형을 기술해 놓았는데, 이 책의 이론이 천문학을 그 후 1,400년이나 지배했다. 또 그는 히파르코스의 연구 결과를 기초로 해 48개의 별자리와 1,022개의 별들에 대한 성표와 성도를 만들었다.

 

아랍의 천문학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천문학의 중요한 발견과 발전은 아랍의 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슬람 제국이 형성된 622년에서 15세기까지 약 800년 동안 아랍이 세계 과학계를 지배했다. 중동,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에 살던 천문학자들이 그리스어와 고대 인도의 사스 크리크 어로 된 책들을 아랍 어로 번역함으로써 그리스 천문학을 아랍의 천문학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이슬람교에서는 매일, 매달 특정 시간에 특정 규칙에 따라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메카와 이슬람 성전이 있는 방향을 확인하고 시간을 잴 때에 정확하게 측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구에서 아랍의 천문학자들은 매우 복잡한 구면 삼각법, 삼각 함수, 그리고 대수학을 발달시켰다. 원래 스리스에서 시간 측정에 사용되던 아스트롤라베를 아랍의 천문학자들이 크게 개량했다. 알바타니 같은 위대한 아랍 천문학자와 울루그 베그 같은 아랍의 제왕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관측에 근거해 아랍의 천문학을 세웠다. 그들은 훌륭한 관측 시설들도 많이 만들었다. 이 중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란의 마라케 등지에 세운 천문대들이 가장 훌륭하다. 이 유적지들에 가 보면 안에 거대한 규모의 천문 관측 기기가 들어 있던 엄청난 크기의 건물과 다양한 종류 사분의 들이 걸려 있던 높은 담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사분의는 별이 자오선을 통과할 때 위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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